"차라리 문을 닫고 남의 집에서 설거지라도 하는 게 낫겠어요. 손님 기다리는 것도 괴로워요. "
지난 27일 낮 12시쯤 경기도 양주시의 한 오리고기 전문점.
한창 손님들이 많을 점심시간이지만 식당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땐 차디찬 냉기마저 엄습했다.
이때 50대 중년의 한 여성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4년째 이곳을 운영하던 이명순(54.여) 씨는 전기와 난방을 모두 끄고 영업을 접었다. 하지만 식당을 떠나지 못한 채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17일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 확산 고비를 맞으면서 이곳까지 손님들이 뚝 끊겼다.
종업원 두 명마저도 월급을 받지 못할 것 같아 그만두고 말았다.
이 씨는 "지난해까지는 그럭저럭 장사가 됐었는데 올해부터 불경기에 AI까지 겹치면서 예약했던 손님들마저도 모두 취소했다"며 "하루아침에 메뉴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기북부 지역에서는 AI가 발병되지 않았는데도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며 "익혀서 먹으면 괜찮다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다른 오리고기 전문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장으로 보이는 50대 남성만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홀로 카운터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 남성은 "심란하니 제발 나가달라"며 취재를 한사코 거부했다.
오리에 이어 전파 속도가 빠른 닭이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도계장과 양계 농가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도계장.
마니커가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AI 이동제한으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뒤로 대형 차량방역기와 방역복을 입은 직원 3명이 보초를 서듯 도계장을 지켰다.
시장 점유율 15%로 국내 2위 판매업체인 마니커는 이곳에서 하루 평균 20만 마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아직까진 생산에 차질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마니커 관계자는 "닭을 실은 대형트럭만이 출입이 허용돼 직원들도 차량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며 "혈액 샘플링으로 전수조사를 통과한 닭들에 한해 가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계장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동두천시는 양계 농가들 입구마다 차량방역기를 설치해주고 매일같이 방역차량을 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44년째 양계 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기(76) 씨 부부는 이동제한 조치가 생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0만 마리에 달하는 닭을 키우고 있지만, 병아리를 농가에서 떨어진 곳에 위탁을 맡기는 바람에 노계들이 교체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 부부는 "계란 값은 계속 떨어지는데 농장 사료 값은 그대로"라며 "농민들은 이래저래 힘들어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양계 농가를 운영하면서 이 지역에 AI가 온 적은 없다"면서도 "올해처럼 빨리 확산되는 건 보지 못해 겁이 난다"고 덧붙였다.